여보세요, 미스 김 안녕하세요
여기는 청파동 청년 박이요
지나간 일요일은 약속한대로
하루 종일 극장 앞에 비를 맞으며
기다리게 하였으니 고맙습니다
심연옥 · 남백송이 부른 <전화통신>은 1958년 가요계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1943년 이미 <빈대떡 신사>를 불러 히트한 한복남이 만든 곡인데, 남녀가 번갈아 부르는 교창(交唱)이 간드러진데다, 흥겨운 리듬은 당시 피폐했던 사회적 분위기를 확 바꿔놓았던 것이다.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도 왕성한 가수 활동을 하던 원로가수 남백송(본명 김지환) 씨가 지난 달 29일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54년에 가요계에 데뷔한 남백송 씨는, <전화통신>을 비롯하여 <죄 많은 인생>, <방앗간 처녀> 등 수많은 히트곡과 함께 아리랑 레코드와 도미도 레코드의 전속 가수를 거친 50년대를 대표하는 원로가수다.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KBS 1TV '가요 무대'에 출연하여 고 박재홍 씨의 <경상도 아가씨>를 구성지게 불렀고, 지난해에는 가요 무대의 최다 출연 기록을 세우는 등 우리와 함께 했던 그가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남백송 씨는 1930년대 노래 <처녀 총각>을 재취입해 널리 알려졌고, 지난 2009년에는 신곡 <아, 인생>을 발표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너와 나와 정다웁게 가는 길이면
비가 나리는 삼등열차 창 밖에
울면서까지 떠나지나 않으리
사랑에 버림받고 열차에 떠나가는
고인이 불러 히트한 <이별의 삼등열차>는 그를 싣고 영영 우리 곁을 떠난 것일까.
임께서 가신 길은 빛나는 길이 옵기에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전화통신>을 함께 불렀던 원로 여가수 심연옥은 1947년 가수활동을 시작하였고, 6.25가 발발하자 대구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1952년 <아내의 노래>를 불러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세상에 알려졌다. 손목인 작곡 김백희 노래의 <안해의 노래>를 유호 선생이 가사를 바꿔 쓴 <아내의 노래>를 새로 취입한 노래다.
이어 도미도레코드 등에서 <그대 이름은>, 선배가수 현인이 작곡한 <도라지 맘보>, 1957년에는 “오라이 스돕 마지막 뻐씁니다”로 시작하는 <시골버스 여차장>으로 인기절정을 누린다. 1950년대 중반에 가수 백년설과 결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지금은 미국 뉴저지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까지 백년설 선생기념사업회를 맡아 가요계 발전에 일조했던 원로가수 남백송 · 한복남 콤비 등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류 아이돌스타가 세계무대를 누빌 수 있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