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성인을 향한 기도에 대하여

이 주제는 아마도 ‘하느님께 기도하는데 과연 천사들이나 성인들의 중재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를 용서받고 그로부터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통교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이러한 세례를 통해 공통된 사제직과 더불어 왕직, 예언직을 부여받게 되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례로써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통교가 가능해졌다면 왜 굳이 천사나 성인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 필요할까요?

    구약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과의 통교를 위해 천사들이나 예언자들, 영도자들을 중재자로 이용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이브’-영어식 발음, ‘하와’-히브리어 발음)가 죄를 범하면서부터 하느님과 인간의 통교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느님이 인간을 먼저 거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써 하느님을 두려워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숨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인간을 찾으십니다. “아담아, 아담아!”, 즉 “사람아, 사람아!”라고 부르시지만, 아담 곧 사람은 죄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숨고 하느님을 피하게 된 것입니다(아담은 ‘흙’이라는 어원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에덴동산(하느님 나라)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고 하느님 나라를 잃게 된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받게 되리라 경고하셨던 벌, ‘죽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으면, 다시 말해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게 될 임을 경고하셨던 것입니다(창세 2,17). 하느님과의 통교가 끊기고 그분과 함께할 수 없게 됨은 곧 죽음이고 이 죽음의 원인은 바로 ‘죄’입니다(로마 6,23). 이런 인간의 암담한 상황을 구원으로 이끌어주신 분이 성자, 즉 나자렛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당신의 피로써 죄를 보속하시어 하느님과 인간과의 정의를 회복하시고 인간이 다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일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인간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질 때에 비로소 참다운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대화가 곧 기도입니다.

    그런데 세례로써 죄 사함을 받은 인간이 또 다시 새로운 죄를 범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문제가 대두됩니다. 이 때에 물론 죄를 졌더라도 통회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개인의 참다운 회개가 있기 때문에 사제가 죄를 사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개신교의 입장임). 그러나 죄지은 인간 스스로가 하느님께 직접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 가능했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아라. 누구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요한 20,22-23 참조)? 인간이 스스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왜 중재자로서 세상에 오셔야 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인간을 하느님과 다시 결합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순간, 결합되었던 하느님과의 관계는 또 다시 끊어지게 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는데 어떻게 그 사람의 기도가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죄를 지었다면 아담과 하와처럼 이미 죽은 것이 아닙니까? 이미 죽은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의 기도로써 다시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사제를 중재자로 세우심으로써 죄에 빠진 인간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도록 그들에게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그 권한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당시만이 아니라 그들의 후계자들에게 영원히 계승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다락방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다면 성서에 기록해서 남겨놓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후에라도 죄를 용서하는 사제들의 권한에 의심을 품을 사람들이 있을 것에 대비해서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죄로써 다시 죽음에 떨어진 아담과 하와들’이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받기를 청한다면 이에 대해 사제는 ‘그리스도의 피의 대가’로 그들을 용서하고 다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일 수 있도록 하는 ‘중재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구약에서 모세는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모세만이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었고 백성들의 용서를 구할 수 있었으며 또한 사제들만이 제물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세례 이후에 다시 죄를 짓는다는 것은 세례로써 죄 사함을 받았더라도 또 다시 하느님을 거부하는 행위이자 구약으로 되돌아 가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죄를 다시 용서해 주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시켜 줄 ‘특수한 사제의 역할’이 또 다시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여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를 사하여줄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는 ‘공통 사제직’(개인이 세례를 받으면 죄가 씻겨지고 성령을 통하여 ‘의화’되어 하느님을 마음의 성전 안에서 뵈오며 구약의 사제들만이 수행했던 희생의 제물을 드릴 수 있고 기도도 직접 올릴 수 있게 된 직무이자 은총을 말함)에만 너무 치우치는 경향이 있지만 가톨릭의 ‘특수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제직’이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사들과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희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
    고 있다는 것을 알아 두어라.”(마태 18, 10)

    이 구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느님께서도 직접 사람의 행위를 보실 수 있는데 왜 굳이 각 개인의 천사들, 즉 수호천사들이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강조하셨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인간이 아무리 완전해진다 하더라도 천사들만큼 완전해 질 수는 없습니다. 천사들은 흠도 티도 없기 때문에 하느님을 직접 뵈올 수 있지만 인간은 세례를 받고 아무리 큰 성덕에 다다랐다 할지라도 천사들의 깨끗함보다는 부족하기에 하느님을 더 가까이에서 뵈올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로 사도는 “지금은 거울을 보듯 희미하게 밖에 볼 수 없는 상태이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1고린 13,12). 야곱이 베텔에서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수많은 천사들을 본 것은 인간과 하느님을 연결해주는 것이 곧 천사들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였듯이 하느님은 하늘에 사시고, 인간은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뵈올 수 있지만 희미하게 밖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림에 있어 ‘하느님과 더 가까이 계시어 하늘처럼 깨끗한 존재’인 천사들이 인간을 대신하여 기도를 올리는 것이 죄의 더러운 악취로 감싸인 인간 스스로가 기도를 올리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겠습니까?

    만약 아이가 아버지에게 큰 잘못을 저질러서 쫓겨나 있다가 죄를 뉘우쳐 용서를 청하고 싶다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 전화하여 아버지께 대신 용서를 빌어달라고 청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어머니의 중재에 어느 정도 마음이 풀린 아버지께로 가서 용서를 청하는 것이 훨씬 더 쉽고 효과적일 것입니다. 또 두 아이가 있는데 한 아이는 부모님의 마음에 흡족하게 행동하는 아이이고 한 아이는 그렇지 못해서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을 때 부모의 마음에 잘 들도록 행동하는 아이가 아버지에게 가서 대신 용서를 청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에서 천사나 성인들께 대신 전구해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개신교에선 천사나 성인들을 통하는 것이나 인간 스스로가 직접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나 그 효과가 같다고 주장하지만 그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성모님(마리아)의 예를 들어봅시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은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당신은 원하지도 않으셨고 계획된 일 또한 아니었음에도 기적을 행하시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바로 성모님의 청하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도 않았다고 말씀하시며 “당신과 내가 무슨 관계입니까?”라고 성모님께 질문하십니다. 물론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이십니다(원하신다면 육체적인 어머니).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일은 아들이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에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어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어머니는 주저 없이 당신을 위해서 때가 이르지도 않은 기적을 해 주시겠다는 말로 알아듣고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명령하셨고 이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아들 예수는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다른 이가 이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청했었다면 예수님께서 들어주셨을까요?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들어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성인들을 통한 기도는 불가능한 것까지도 가능하도록 해 줍니다. 이와 같을 진대, 죄인인 인간이 올리는 기도와 훌륭한 성인들을 통해 올려지는 기도의 효과가 어떻게 같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천사들이나 성인들을 통해 기도할 때에 그 분들을 향한 사랑이 더 깊어지고 그 분들을 닮아가려는 마음이 절로 생겨날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매일 기도하는 사람이 어찌 프란치스코의 가난함과 겸손함과 사랑을 배우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볼 때 성인들과 천사들을 통한 이와 같은 기도는 우리가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게 될 것이 당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이런 산 이와 죽은 이의 통공(通功)을 원하시는데, 이는 삶과 죽음은 끊긴 것이 아니라 이어진 것이고, 또한 산 이에게도 여러 가지로 유익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을 통한 기도는 우리 자신의 처지에 대한 겸손함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에 또한 하느님께서 더 즐겨 받아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