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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자료실] 4월의 성인성녀
작성일 : 12-05-25 15:17  조회 : 4,640회 
    성인성녀4월.hwp (17.0K) [2] DATE : 2012-05-25 15:17:22
 
 
4월의 성인성녀 입니다.
안토니오, 카타리나, 마리아나, 루도비꼬, 펠레티에르, 베르나데트를 올렸습니다.
영명 축일을 맞으신 어르신들 축하드립니다.
늘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성인명    :              안토니오(Anthony)
축일      :               4월 14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리투아니아(Lithuania) 
활동연도  :         +1342년
같은이름  :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리투아니아를 통치하던 젊은 관리였던 안토니오는 이교도였으나 우연한 기회에 그리스도교를 알고 세례를 받았다. 그는 새로 받아들인 이 신앙에 너무나 충실하였고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교회의 단식일에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버티다가 결국 투옥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사형선고를 받아 빌나(Vilna, 현재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에서 1342년 6월 14일에 순교하였다.
그는 빌나의 수호성인으로서 리투아니아 사람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로부터도 공경을 받고 있다.
 
 
성인명    :           가타리나(Catherine)
축일      :               4월 29일 
성인구분  :         성녀 
신분      :         수녀, 교회학자, 신비가 
활동지역  :         시에나(Siena)
활동연도  :          1347-1380년 
같은이름  :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불과 6살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생애를 미리 보는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그녀는 부모가 자신을 결혼시키려는 모든 노력에 반항하고, 오로지 기도와 단식에만 전념하였다.
그녀는 16세 되던 해에 도미니코 3회원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그리스도, 마리아, 성인들에 대한 환시는 더욱 잦아졌고, 동시에 악마적인 환시도 종종 일어났다고 한다
1375년에 피사를 방문하는 도중에 오상 성흔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오상이 생전에는 볼 수 없었는데, 임종할 즈음에는 확연히 드러났다고 한다. 그녀는 플로렌스와 그레고리우스 교황간의 불화를 중재하는 데에는 실패하지만, 아비뇽(Avignon)의 교황좌가 1376년에 로마(Roma)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 후로는 자신의 신비적인 체험들을 기록하는 일에 전념하여 성녀 카타리나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카타리나는 그리스도인 신비가 중에서도 대가에 속한다. 그녀는 “대화” 외에도 400여 통의 서한들을 남겼다. 1461년에 시성되었고, 1939년에는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으며, 1970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교회 박사로 선언되었다.


 

  성인명       :      마리아나(예수의)(Mariana of Jesus)
 축일          :      4월 27일 
 성인구분      :      복녀 
 신분          :      동정녀 
 활동지역      :      마드리드(Madrid)
 활동연도      :      1565-1624년 
 같은이름      :      마리안나 

에스파냐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마리아나는 맨발의 메르체다리오회에 입회하여 수녀가 되었다. 그녀의 삶은 참회와 성체성사에 대한 애정 그리고 열정적인 기도로 특히 유명하다. '마드리드의 백합'으로도 불리는 그녀는 1624년 4월 17일 마드리드에서 선종하였고, 1784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시복되었다.


성인명         :       루도비코(Louis)
 축일          :       4월 28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신부,  설립자, 증거자
 활동지역      :       몽포르(Montfort)
 활동연도      :       1673-1716년 
 같은이름      :       누수,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렌(Rennes)의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받은 후 170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의 첫 임지는 푸아티에(Poitiers)의 한 병원에서 일단의 여성 그룹을 조직하였는데, 이 단체가 후일 ‘지혜의 딸 수녀회’가 되었다. 그는 주로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설교하였는데, 이것이 또 그곳 주교의 원성을 듣게 되어 설교권을 박탈당하였다. 그래서 그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로부터 선교사 총대리로 임명되어 브르타뉴(Bretagne) 선교 길에 올랐다.
  그가 늘 문제를 일으키게 된 주된 이유는 과도한 신심 때문이었으나 또한 그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의 주요 신심은 마리아와 로사리오(묵주기도)였다. 그는 이 신심을 전파하기 위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이란 책을 저술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1715년 그는 수 명의 사제들을 규합하여 ‘마리아 선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프랑스의 생로랑쉬르세브르(Saint-Laurent-sur-Sovre)에서 운명하였고 1947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인명      :마리아 아 산타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르(Mary a santa Euphrasia Pelletier)
 축일        :          4월 24일 
 성인구분    :          성녀 
 신분        :          설립자 
 활동지역    :          앙제(Angers)
 활동연도    :          1796-1868년 
 같은이름    :          메리, 미리암, 에우쁘라시아, 에우프라씨아, 유프라시아

  1814년 10월 20일 애덕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1825년에 투르(Tours)에 위치한 수녀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 후 그녀는 앙제에 수녀원을 설립해 달라는 앙제 주교의 요청을 받고 파견되어 '앙제의 착한 목자 애덕 성모 수녀원'을 성공적으로 설립한 뒤에 투르로 돌아왔다. 그러나 앙제 수녀원이 운영상 많은 어려움을 겪자 다시 앙제로 가서 수녀원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녀가 경험을 쌓으면 쌓을수록 자기 수녀회의 구조를 크게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으나 수녀원 내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녀는 야심이 많고 순종하지 못한다는 비난과 함께 '능력은 있으나 한 나라를 다스려야 적성이 풀릴 사람'이란 평을 받았다. 마침내 그녀는 앙제에 '착한 목자 수녀회'를 설립하고, 1835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로부터 공식적인 승인을 받았다.

   이 수녀회는 윤리적 위험에 처한 여성들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설립되었다. 성녀 에우프라시아가 33년 동안 이 수녀회를 지도하는 동안 110개의 수녀원으로 발전하였는데, 현재 이 수녀회의 회원 수는 10,000명이 넘는다. 그녀는 1868년 4월 24일 앙제에서 선종하였으며, 1933년 시복되고 194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인명       :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Mary-Bernadette Soubirous)
 축일           :          4월 16일 
 성인구분       :          성녀 
 신분           :          수녀 
 활동지역       :          루르드(Lourdes)
 활동연도       :          1844-1879년 
 같은이름       :          메리, 미리암, 베르나데타, 베르나데트, 베르나뎃따, 벨라뎃다

1858년 2월 11일과 7월 16일까지, 그녀는 루르드의 가브(Gave) 강변에 있는 마사비엘르 바위에서 동정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체험하였다. 18 차례에 걸쳐 그녀는 매우 젊고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는데, 그 부인이 자신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하였다. 이 부인이 나중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로 호칭하게 되는 동정 마리아로 인정받게 되었다.
1866년에 그녀는 프랑스 느베르(Nevers)의 사랑의 자매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일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무슨 일이오?” 이때 그녀의 대답은 “아픈 일”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35세에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성녀 마리아 베르나데트는 1925년 6월 14일 복자품에 오른 후, 1933년 12월 8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마리아 베르나데트가 시성된 것은 그녀가 성모 발현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겸허한 단순성과 그녀의 전 생애를 통해 보여 주었던 절대로 의심하지 않은 신뢰심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