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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마당 > 말씀나눔 > 소경의 꿈(中)
소경의 꿈(中)
정영수
작성일 : 13-03-18 08:49  조회 : 20,896회 
 중남미 카리브 해(海)에도 어엿한 미국영토가 있다.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부유한 항구(Rich Port)'라는 뜻을 지닌 섬나라다. 2010년 지진으로 초토화된 아이티(Haiti) 부근의 미국 자치령(Commonwealth)인데, 식민지와 주(州)의 중간 격(格)인 이 나라는 원래 스페인령이었다. 그러나 1898년 미국과 스페인 간의 전쟁 끝에 미국에 넘어갔다. 푸에르토리코 주민은 미국 시민권은 있지만 대통령 선거권은 없고, 외교와 국방은 미국이 맡는다.
 
 인구 330만 명의 이 조그만 섬나라에서 불세출의 맹인가수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iano)가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앞을 볼 수없는 장님이다. 9살 때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18살 때 뉴욕으로 진출, RCA 레코드사에 발탁되어 계약을 맺으면서 그의 운명은 180도 달라진다. 전설에 가까운 어쿠스틱 기타(Acoustic ‧ 일종의 통기타)솜씨에 소울 풍의 목소리로 동양적인 애수와 포근함을 노래했다. 호세는 히트곡 <비(Rain)>, <사랑이 있었네(Once There Was A Love)>등으로 32개의 골드앨범과 6회에 걸친 그래미상을 거머쥐고 슈퍼스타에 등극한다.
 
 1945년 9월 10일, 태어나면서부터 앞이 안 보이는 신체적 장애를 극복한 그가 67회 생일을 맞는 2012년 9월 10일 한국을 방문했다. 놀랍게도 호세 펠리치아노의 소망은‘남북한 통일’이었고, 한민족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온 것임을 밝혔다. 그는 제2회 파주포크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광주, 부산을 거쳐 임진각까지‘통일기원’전국 투어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보다 7살 아래인 이용복은 이를테면‘한국의 호세 펠리치아노’. 호세 펠리치아노를 가장 근사하게 답습한 대한민국 가수다. 8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어 맹아 학교에 입학한 이용복은 1970년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수로 데뷔한다. 처음엔 장애인이라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았으나, 이듬해 신인 가수상을 석권하면서 재능을 인정받는다. 독특한 12줄 기타의 기타리스트로서도 탁월한 솜씨를 보인 그는 <그 얼굴의 햇살을>, <줄리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으며 1972년과 1973년 연속으로 MBC 10대 가수상을 받았다.
 
 장애를 극복하고 우뚝 선 아티스트로 전재덕을 어찌 빼놓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는 생후 보름 만에 시력을 잃는다. 전재덕이 인천의 시각장애전문학교인 혜광학교에 다닐 때 김덕수가 그의 음감(音感)을 알아채고 사물놀이패에 레려와 장구를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투츠 틸레만스(Toots Thielemans)의 하모니카소리에 넋을 잃는다.‘하모니카의 전설’ 투츠는 벨기에 출신으로, 5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재즈의 거장 베니 굿맨(Benny Goodman)과 공연하던 거장이 아닌가.
 
 전재덕은 재즈하모니카를 익힌 지 8년 만에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섰고, 국내외에서 많은 유명아티스트와 협연을 가졌다. 단 한 뼘의 하모니카가 전재덕의 신체적 장애를 한방에 날려버린 것이다. 그가 ‘한국의 스티비 원더’로 불리는 까닭도, 비록 앞은 못 보지만 타고난 재즈 음악가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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