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Map 전체메뉴닫 기
본당소개 사목평의회 신앙생활 예비자교리 나눔마당 카페모임 정보마당
사목방침 사목평의회소개 성당일정 천주교 공지사항 카페홈 수원교구
본당소개 산하위원회 미사안내 입교안내 말씀나눔 카페만들기 언론
신부님 주보 교리반소개 자유갤러리 성지
사무실 강론 교리내용 행사갤러리 가톨릭포털
관할지역안내 교리상식 세례명/대부모 오늘의연도 선교
찾아오시는길 이달의말씀 교리상담및질문 열린상담 해외성당
이달성가 모집안내 투표 정기간행물
 
       
 
본당소개 사목평의회 신앙생활 예비자교리 나눔마당 카페모임 정보마당
 
나눔마당 > 말씀나눔 >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
우재구
작성일 : 15-06-22 11:18  조회 : 13,976회 

1895년 10월 8일

일제는 주한 일본 공사 미우라 (三浦梧樓)의 지휘로 50명의 군인,경찰, 신문사 사장, 낭인 들을 동원하여 조선의 왕비 인 명성황우 (明成皇后-민비)를 시해하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이사건에 연루된 우범선 (禹範善)-- 조선군 훌련대의 제2대대장 계급인 참령(參領)--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1903년 11월 24일

우범선은 민비의 심복인 고영근(高永根)에게 망명지인 일본 땅에서 암살된다. 43세의나이로--.다섯살에 아버지를 암살로 잃은 어린이 우장춘 (禹長春)은 자라 세계적인 육종학자가 된다.

1950년 3월 8일

우장춘 박사는 아버지의 나라 한국으로 돌아 온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2남 4녀를 일본에 남겨 둔체--.

첫째 반역자로 몰려 서 암살 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우범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둘째 농업환경이 열악한 조국에서 육종학을 꽃피워 보겠다는 야심에서--?

최석체 선생은 우장춘 박사와 인연이 깊은 분인데 말씀하시기를 "아버지 대신 조국에 속죄하기위해 가족을 버리고 귀환 했노" 라고 증언하였다.

우장춘 박사의 이 기막힌 부자간의 갈등은 개인사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역사의 흐름과 무관하다 할 수 없다. 오히려 역사의 향배를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라 믿는다고 조선사를 연구한 학자는 주창한다.

역사 학자들은 이같은 일을 살피면서 역사의 존엄성을 깨 닫게 된다 한다. 무엇이 역사를이토록 엄숙하게 흐르게 하는가?그는 역사를 매만지는 보이지 않은 손 즉 神이 있다는 결론을내린다.

그는 주창한다. 역사를 매만지고 역사를 보살피며,역사를 엄숙하고 정연하게 흘러 가게 하는 신이 없고서는 역사에서 감동을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역사의 신은 사소한 그것들 까지도 큰 흐름으로 관장한다. 그러므로 역사를 두려워 할줄 아는 것이 가장 값진 겸손일 것이라고--.

신봉승의 양식과 오만 98페이지에서  


   

 
동천성바오로성당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수집거부 홈페이지 이용문의
천주교안내 성당사무실 성당일정 카페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