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0월 8일
일제는 주한 일본 공사 미우라 (三浦梧樓)의 지휘로 50명의 군인,경찰, 신문사 사장, 낭인 들을 동원하여 조선의 왕비 인 명성황우 (明成皇后-민비)를 시해하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이사건에 연루된 우범선 (禹範善)-- 조선군 훌련대의 제2대대장 계급인 참령(參領)--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1903년 11월 24일
우범선은 민비의 심복인 고영근(高永根)에게 망명지인 일본 땅에서 암살된다. 43세의나이로--.다섯살에 아버지를 암살로 잃은 어린이 우장춘 (禹長春)은 자라 세계적인 육종학자가 된다.
1950년 3월 8일
우장춘 박사는 아버지의 나라 한국으로 돌아 온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2남 4녀를 일본에 남겨 둔체--.
첫째 반역자로 몰려 서 암살 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우범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둘째 농업환경이 열악한 조국에서 육종학을 꽃피워 보겠다는 야심에서--?
최석체 선생은 우장춘 박사와 인연이 깊은 분인데 말씀하시기를 "아버지 대신 조국에 속죄하기위해 가족을 버리고 귀환 했노" 라고 증언하였다.
우장춘 박사의 이 기막힌 부자간의 갈등은 개인사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역사의 흐름과 무관하다 할 수 없다. 오히려 역사의 향배를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라 믿는다고 조선사를 연구한 학자는 주창한다.
역사 학자들은 이같은 일을 살피면서 역사의 존엄성을 깨 닫게 된다 한다. 무엇이 역사를이토록 엄숙하게 흐르게 하는가?그는 역사를 매만지는 보이지 않은 손 즉 神이 있다는 결론을내린다.
그는 주창한다. 역사를 매만지고 역사를 보살피며,역사를 엄숙하고 정연하게 흘러 가게 하는 신이 없고서는 역사에서 감동을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역사의 신은 사소한 그것들 까지도 큰 흐름으로 관장한다. 그러므로 역사를 두려워 할줄 아는 것이 가장 값진 겸손일 것이라고--.
신봉승의 양식과 오만 98페이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