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으로부터 요르단 강 서안 여리고(Jericho)로 가던 나그네가 강도를 만나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다. 사회 지도층인 제사장과 레위(Levi)인은 못 본 체 지나갔지만, 정작 유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구해준다. 부상자를 말에 태워 여관집에 데려가 치료를 해주고, 주인에게 돈을 주며 계속 돌봐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은 해마다 이맘때면 이웃사랑과 나눔에 대한 가르침의 주제로 떠오른다. 이 아름다운 장면들은 미술의 소재가 되어 많은 그림에 착한 사마리아인이 등장하기도 한다. 파리 국립도서관에는 그리스도가 현신하여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삽화도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法)도 있다.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지 않은 행위를 처벌하는 법(Good Samaritan Law)이다. 이를테면 부상자를 지나쳐 버린 제사장과 레위인과 같은 행위를 구조 거부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법상 불구조죄(罪)가 적용되지는 않는다.
지난 2001년 1월 도쿄 지하철 플래트홈에서 취객을 구조하고 본인은 탈출하지 못해 숨진 고 이수현 씨의 경우가 좋은 본보기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가 돼있는 사람은 이미 착한 사마리아인이 된 것이다. 프랑스 형법은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자는 3개월에서 5년까지의 징역과 15만 프랑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고 되어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응급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하다 본의 아닌 과실로 인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거나 손해를 입힌 경우 민ㆍ형사상의 책임을 감면 또는 면제한다는 내용의 ‘착한 사마리아 법’이 시행되고 있다. 사고를 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을 구해주려다 결과가 잘못되면 죄를 덮어쓰는 경우가 많아 위험에 처한 사람을 봐도 도움을 주저하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성서에만 나오는 얘기로 그쳐선 안된다. 또 외국인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라는 법은 없다.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용기야말로 참된 나눔의 정신이자 인간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