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은 봄
하루는 아침
아침은 일곱 시
산기슭의 이슬 진주처럼 빛나고
The year’s at the spring
And day’s at the morning
Morning’s at seven
The hil-side’s dew-pearl’d
19세기 영국의 낭만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은 희곡형식으로 쓴 그의 극시(劇詩 · Dramatic Poetry) <피파의 노래(Pippa’s Song)>에서 이렇게 읊었다. 저명한 목사님 집안에 태어나 소위 옥스브리지(Oxford나 Cambridge)를 가지 않고도 홈스쿨링으로 대성하여 그의 학덕과 식견은 매우 뛰어나다고 영문학을 전공한 김동길 박사는 그를 칭송했다. “하느님이 하늘에 계시니 / 온누리가 평화롭도다” 라고 브라우닝은 글을 맺는다.
그의 천재성은 초기의 시작(詩作)에서도 명백히 드러났지만, 영국 시단(詩壇)에 이미 알려진 연상의 여류시인 엘리자베스 바렛(Elizabeth Barret)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빛을 더한다. 엘리자베스는 낙마(落馬)로 척추에 불치병을 앓아 양가 부모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치자 ‘엄동설한’의 영국을 떠나 온화한 이탈리아의 베네치에(Venice)에 살면서 시작에 전념하였다.
내가 대학 2학년 때인 1962년, 국내에선 구할 길이 없어 영국에서 ‘직구’한 <불멸의 시(Immortal Poems of the English Language) 399쪽에 나오는 이 한수는 나와 함께 60년을 가까이 하면서 여름에도, 가을에도, 그리고 겨울에도, 봄을 기다리게 해준다. 아무리 추워도 봄은 틀림없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힘을 내준다.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겠지요?
같은 시집 299쪽에 나오는 이 시구(詩句)는, 브라우닝과 같은 나라에서 같은 시대를 산 천재시인 셸리(Percy Bysshe Shelley)의 <서풍의 노래(Ode to the West Wind)>의 맨 끝에 나온다. 역시 브라우닝처럼 나로 하여금 영원히 봄을 기다리게 해줬다. 여기서 ‘봄’이란 물론 아름다운 세상이요, 지금 우리가 겪는 혼돈의 ‘겨울’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당시만 해도 영국 어디선가에서 배로 실 날라 두어 달 만에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나의 이 낡은 시집(Immortal Poems)은, 주인과 함께 늙어가면서 수명을 다해 한쪽씩 넘길 때마다 종이가 가루로 한 웅큼 이나 부서져 비닐봉지에 신주단지 모시듯 보관하고 있다.
<눈길 걷다보면 꽃길 열릴거야>
2년 전쯤일까, 시청 앞 광장을 걷다가 무심코 올려다 보인 글귀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리모델링 후 서울도서관이 된 구 서울시청 본관건물에 크게 나붙어 있었던 것이다. 서울시가 ‘겨울, 희망의 봄’을 알리는 시민 창작문안을 공모해 당선작으로 선정된 글귀란다.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박노해의〈겨울 사랑〉은 “겨울을 사랑해야 겨울을 이겨낼 수 있고, 겨울을 이겨내야 봄을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눈보라 치는 인생의 추운 겨울을 내가 사랑해야 꽃피는 봄날의 향기를 맡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로키山에 봄이 오면 나는 당신 곁으로 – 미국인 의 ‘Home Song’
https://www.youtube.com/watch?v=Bq7XPAzTxq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