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다르크’라면, 창과 칼을 들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마상의 여장(女將)을 떠올리게 된다. 드라마틱한 일생 때문에 잔 다르크는 소설과 영화의 단골 주인공이다. 그녀가 신(神)의 계시를 들은 것은 열두 살 때로 알려져 있다. 천사들이 프랑스를 침략한 영국군을 몰아내시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은 길고 긴 백년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프랑스 군대는 오를레앙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국군에게 붙잡힌 잔 다르크에게 영국법정은 ‘마녀’라는 이름으로 화형을 선고한다. “총칼을 들고 전장에서 날뛰는 아녀자가 어찌 감히 하느님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힐책에 그녀는 “나는 전장의 마상에서도 신(神)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그녀를 마녀로 낙인찍은 것이다.
백년전쟁의 이 끝난 지 489년 만인 1920년 가톨릭교회가 잔 다르크를 시성(諡聖)했다. 마녀혐의가 풀리고 명예 회복된 지 464년 만이다. 헨리8세에게 고난을 당하여 목이 잘린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의 시성도 400여 년이 걸릴 만큼 가톨릭 성인의 반열에 오르기란 오랜 시간과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일이었다.
시성(諡聖 · Canonization)이란 가톨릭에서 죽은 자들의 탁월한 신앙과 성덕을 기리기 위해 교회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날부터 성인(聖人)으로 추앙하며, 가톨릭 신자는 그 이름을 세례명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내한한 교황 바오로 2세는 병인(丙寅) 대박해(1866~1868) 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 등 103위에 대한 시성식을 갖고, 성인에 봉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4번째의 성인대국(聖人大國)이 된 바 있다.
프랑스의 경우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의 최대 도시이자 주요 항구도시인 뉴올리언스(New Orleans)는 잔 다르크가 대승을 거둔 오를레앙 전투를 기려 붙여진 이름. 마상에서 칼을 든 그녀의 동상을 볼 수도 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 안의 예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 처럼 살고 싶어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과 함께 했던 마더 테레사(Teresa) 수녀가 지난 4일 가톨릭 성인품에 올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열린 시성식에는 10만 명이 넘는 신자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메웠다. 1997년 8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지 19년 만에 성인품에 오른 건 이례적인 일이다.
1950년 인도 캘커타(Calcutta · 지금의 콜카타)에 사랑의 선교회를 만들어 빈민과 병자 등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했던 그녀는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헌신과 봉사의 상징이 됐다. 1910년 지금의 마케도니아공화국에서 알바니아계 집안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신앙심이 돈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아일랜드로 가 수녀회에 입회하여 테레사(Teresa)라는 이름을 받았고, 영어를 익힌 뒤 1929년 선교를 위해 인도를 택했다.
검은 수녀복 대신 인도에서 가장 가난하고 미천한 여성들이 입는 흰색 '사리'를 입고 평생을 가난 속에서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사람들, 버려진 아이들, 노인들을 위하여 헌신하여 '빈자(貧者)의 성녀(聖女)'로 추앙받았다. 현지인들과 동화하기 위하여 인도로 귀화하였고. 1952년 캘커타의 힌두교 사원에 '임종자의 집(Home for Sick and Dying Destitutes)'이라는 첫 공동체 공간을 마련하였다. 1953년 2월에는 사랑의 선교 수녀회 본원을 세우고 종신서원을 하였으며, 1963년 3월 '사랑의 선교 수사회‘라는 남성 수도회를 창설하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을 위해 헌신했던 테레사 수녀. 이젠 사랑과 자비의 성인으로 우리 기억 속에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