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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마당 > 말씀나눔 > '자기연민'은 공공의 적
'자기연민'은 공공의 적
정영수
작성일 : 17-08-29 09:46  조회 : 16,489회 

“Self-pity is our worst enemy and if we yield to it, we can never do anything good in the world(자기연민은 최악의 적이다. 만약 우리가 그것에 굴복하면, 이 세상에서 좋은 일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헬렌 켈러

 

  아내는 다만 좀 씻고 자라고 했을 뿐이다. 자정이 넘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와 지쳐 쓰러져 그냥 드러눕고 말았다. 술기운이 오르고 몸은 천근이었다. 아내의 잔소리를 꿈결에 들으며 잠에 곯아떨어진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곰곰 생각해보니 아내가 야속라고 두렵기까지 했다.


  아뿔싸, 그리고 보니 최근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권고 받았던 일이 떠오른다. 권고라기보다 최후의 통첩이었다. 고민 끝에 아내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고 말았는데, 그 일이 있고나서부터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이제 별 볼일 없어졌다 이거지?>

  평소에 양말 한 짝을 집어던져도 잠자코 치우던 아내였다. 그런데 별안간 매사에 꼬치꼬치 따지고 들질 않는가. 열심히 살아왔지만 나아진 것 없는 자신의 모습에 수시로 측은지심을 느낀다. 이런 생각에 빠져들면 안타깝게도 ‘자기연민(Self-pity)’를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인들은 자기 연민에 빠지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자기연민에 관한 몇 가지 체크항목이 있다. 우선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리스트가 일반적이다. 그 다음 <세상이 내게 일부러 시련을 주는 것 같고, 내 인생에는 이제 내리막길밖에 없다>가 결정적이다. 자기연민에 빠지면 그 감정에 사로잡혀 결국 자신의 삶과 주위의 삶을 망가뜨린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연민은 자기 합리화 때문인 경우가 많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면한다고 착각한다. ‘자신의 상황이 너무 나빠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므로 내겐 책임이 없다“는 식이다. 때론 타인의 관심을 끌기위해 '자기연민'에 빠진다. 살아가는 동안 슬프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슬픔과 불행에 매달리며 자신을 한없이 연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지속되면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하는 마약과 같은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기연민이 두드러진 사람은 자신의 불행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놀랍게도 자기를 연민하고 있는 것이다. 얼핏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연민은 사랑과 다른 감정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아이를 믿고 독립적으로 키우는 반면, 연민하는 부모는 과잉보호를 한다. 자립심을 잃은 아이는 점점 무기력해진다.


  자기연민은 자기합리화 행동으로 이어져 문제가 심각해진다. "나 오늘 너무 힘들었으니, 나에게 선물을 줘야 해"라며 밤늦도록 술을 마시는 등 자위의 행동으로 이어진다. 고생한 나를 위로하는 거라고 합리화를 해보지만 위로가 아닌 자학일 뿐, 과소비 등 피해만 커진다.


  술자리가 잦고 신세 한탄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 뒤에는 자기 연민이 숨어 있다. 공감능력도 떨어져서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너만 힘들어? 나는 더 힘들어"라며 소통을 이어 나가지 못한다. 작은 일에 서러워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자꾸 트러블이 생긴다면, 내가 지금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사고의 틀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차와 자동차가 부딪쳤을 때 '재수 없다'라기 보다는 '큰 사고가 안 나서 다행' 이라는 식으로 관점을 전환시키는 발상이 아쉽다. 필자도 역시 ‘자기연민’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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