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안영(晏嬰)은 내리 세 명의 왕을 받들어 재상을 지냈으나 평생 절제와 검약의 삶을 살았다. 그는 재상이 된 뒤에도 밥상에는 고기반찬을 올리지 않았고 아내에게는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으며, 조정에 들어가면 임금께서 묻는 말에만 대답할 정도로 스스로 품행을 조심하였다. 그는 달변과 임기응변으로도 유명했지만 체수가 작고 볼품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어느 해 안영이 사신으로 초(楚)나라에 가게 되었다. 평소 안영이 비상한 인물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던 초나라 영왕(靈王)은 차제에 그를 시험해 볼 욕심이 생겼다. 안영이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마주보니 외모는 볼품이 없었고, 특히 키가 아주 작았다. 영왕이 안영에게 물었다.
"제나라에는 인재가 없는 모양이지요. 당신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는 걸 보면."
안영의 보잘 것 없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비웃는 말이었다. 그러나 안영은 짐짓 태연하게 대답했다.
"우리 제나라에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워두고 있소이다.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는 것이지요. 저는 작은 사람 중에서도 가장 작기 때문에 이렇게 초나라에 오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영왕이 한방 얻어맞은 꼴이 되었는데 마침 그때 포졸이 죄수를 끌고 지나갔다. 영왕이 포졸에게 물었다.
"그 죄수는 어느 나라 사람인고?“
"제나라 사람인데 도둑질을 한 죄인입니다"
포리의 대답을 듣고 초왕(楚王)이 안영에게 물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남의 물건을 잘 훔칩니까?"
"회남(淮南)쪽의 귤을 회북(淮北)땅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어버립니다(南橘北枳).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는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한 것을 보면 초나라 풍토 때문인 것 같습니다만“
조생 귤(橘)은 중국 회수 이남에서만 난다. 회수의 남쪽인 회남의 귤나무를 회수의 북쪽인 회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枳)로 변해버린다는 것. 사람은 사는 곳이 바뀌거나 처지가 달라지면 환경에 따라 착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즉 사람의 기질도 변할 수 있다는 뜻인데, 강남종귤 강북위지(江南種橘江北爲枳)에서 비롯된 말이다.
연거푸 두 방을 얻어맞은 영왕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고분고분하고 얌전하던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지독한 시어머니가 된다고 했다. 개인 아닌 집단도 처지가 달라지면 속성이 변한다지 않았던가. 그 기지(機智)와 태연함에 초왕은 안영에게 사과를 했다.
안영은 당초 초나라 도성 문에 도착했을 때, 개구멍으로 들어가도록 강요받았다. 그러자 “개(犬)같은 나라에 왔으니 개구멍으로 들어가야 하겠지”라고 말해 초왕을 한방 먹였다.
“애당초 선생을 욕보일 생각이었는데 결과는 과인이 욕을 당하게 되었구려.”하고는 크게 잔치를 벌여 안영을 환대하는 한편 다시는 제나라를 넘볼 생각을 못했다고 전해진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그 심성이 변할 수 있어, 주위의 여건에 따라 착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재정, 교육부문 등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이 신 탱자가 되지 않고 단 귤이 되었으면 하는 건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풍토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먼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