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톤즈>의 남 수단 ‘톤즈 브라스밴드’ 단원 29명이 지난 14일 담양 천주교공원묘원에서 고(故) 이태석 신부의 묘지 위에 국화를 헌화하며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이 신부가 가르쳐 준 <고향의 봄>을 연주했다.
“진짜 아버지 같았는데 … 그리워요”
소년 연주자의 눈이 자꾸만 사진 속의 ‘쫄리’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쫄리(John Lee)는 이 (李)신부의 세례명 요한(John)을 영어식으로 발음하면서 성(姓)을 합쳐 부르는 그들만의 애칭이다. 단원들은 무덤 앞에 놓인 사진 속의 낯익은 얼굴을 하염없이 어루만지며 흐느끼다 끝내 목 놓아 울었다.
온화한 미소로 화답한 사진의 주인공은 이태석(1962~2010) 신부. 내전의 참화로 폐허가 된 남 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펼쳐 ‘한국의 슈바이처’라 칭송받았던 의사 출신 신부였다. 그가 혼을 바쳐 가르치고 보살핀 ‘톤즈 브라스밴드’가 담양 천주교공원묘원의 이 신부 묘소를 찾아 진혼의 음악회를 연 것이다. 2010년 이 신부가 한국에서 선종한 지 2년 만이자, 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위해 귀국한 지 3년 만의 재회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다튜멘터리 <울지 마, 톤즈>로 이니 잘 알려진 톤즈 브라스밴드는 한-아프리카 장관급 경제협력회에 초청을 받아 한국에 왔다. 1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만찬에서 연주를 하기 위해서다. 단원들은 13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 신부가 선종 직전까지 투병하던 양평수도원을 방문해 이 신부가 겪었을 아픔을 함께 나눴다. 이어 14일 그토록 그리던 ‘파더 쫄리’의 묘지를 찾은 것이다.
이 신부는 1987년 의대를 졸업한 뒤 뜻한 바 있어 광주가톨릭대에 다시 들어가 신부의 길을 걸었다. 2001년 아프리카 오지인 수단으로 간 그는 딩카족 마을인 톤즈에서 의료봉사와 교육 활동을 펼쳤다. 병실 12개짜리 병원을 짓고, 열악한 환경과 싸워가며 주민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했다. 학교를 세워 전쟁으로 버림받은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 신부가 톤즈 브라스밴드를 조직한 것도 그런 교육활동의 일환이었다.
“예수님이라면 여기에 학교를 먼저 지을까, 성당을 먼저 세웠을까. 아마 학교를 먼저 지었을 거야.”
선종 1주기를 맞은 고 이태석 신부는 그가 너무나 사랑한 아프리카 수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잠시 고민했다. 가톨릭 사제에게 교회냐, 학교냐 하는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그러나 그는 학교를 택했다. 가난을 대물림하는 아프리카 빈민들에게 당장 급한 건 신성(神聖)보다 교육이었을 것이다.
이 신부는 끝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했다. 2008년 11월 한국에 잠시 입국했다가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끝내 톤즈로 돌아가지 못했다.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돼 증세는 점차 나빠졌고, 급기야 지난해 1월 14일 새벽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 그는 사제이자 의사였으며 교육자이자 음악가, 건축가로 일하여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기도 했다.
“왜 수단인가?”하는 질문에 그는 아프리카에는 우리나라엔 없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과 어린이들의 해맑은 눈동자가 그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남 수단 정부는 한국수출입은행 등과 함께 ‘스마일 톤즈’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현재 남 수단에서는 이 신부가 세운 학교 이외에 한국 정부의 후원으로 수도 주바(Juba)에 1억 달러 규모의 이태석 의과대학을 세우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사단법인 ‘이태석 사랑나눔(John Lee Foundation)’은 남 수단 전역에 학교 보건소를 지어주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니, 하느님 보시기에도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