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교회 전례력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입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위령의 날’(11월 2일)과 연관시켜 11월을 위령성월로 정해 놓았습니다. 모든 성인대축일 다음날을 위령의 날로 지내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성인들을 먼저 기념하고, 그 다음날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달에 신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 형제나 친지(親知)의 영혼, 특히 연옥(煉獄)영혼들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쳤는데, 이는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특히 아무도 기도해 주지 않은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와 희생을 바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다 (히브 9,27).”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위령성월,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하게 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 의미를 되짚어 보는 달입니다.
이 같은 위령성월의 역사적 근거와 진정한 의미는 어떤 것일까?
위령성월을 통해 그 유래와 의의 등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위령성월이 신자들에게 더욱 깊숙이 스며들게 된 것은 교황 비오 9세(1846~1878)와 레오 3세(1878~1903), 그리고 비오 11세(1922~1939)가 위령 성월에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선포한 것이 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사 선포로 인해 위령성월의 신심은 더욱 널리 전파되었고 더불어 11월은 세상을 떠난 부모나 친지의 영혼 특히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를 바치고, 자신의 죽음까지도 뒤돌아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위령성월을 이해할 수 있는 신학적인 근거는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이 기도가 죽은 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전통 교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성인의 통공 교리’는 신자들이 위령성월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는데, 즉 하느님 나라는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된 공동체로서 이 공동체의 주인이며 시작도 마침도 없으신 하느님 앞에서 시간은 무의미한 것이고, 이 안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도 살아있는 이들도 동일한 구성원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살아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이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라는 유대감을 통해 살아있는 이들은 연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또한 이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있는 성인들도 세상에 있는 살아있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산 이와 죽은 이들의 통교가 가능하다는 면에서 위령기도가 가능한 것이며 아울러 위령성월도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위령성월 중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은 연옥에 있는 이들에게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 가톨릭 교회교리서
교회는 ‘모든 성인의 통공’에 힘입어 죽은 이들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 드리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특히 미사성제를 드린다.
교회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도록 기도한다.
“주님, 주님을 결코 떠나지 말게 하소서.”
아무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며”(1티모 2,4)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태 19,26)는 것도 사실이다. (1055-1058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