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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6-28 13:37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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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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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두 명의 탄생지
- 충청도 임천(林川)의 괴인돌이라는 마을. 오늘날의 행정 구역 명칭으로 충청 남도 충화면 지석리는 두 명의 선인, 곧 손선지(베드로, 1820-1866년)와 정문호(바르톨로메오, 1801-1866년)가 탄생하는 영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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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백 년 박해사에서 가장 혹독했던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성인 한재권과 함께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 치명한 두 성인의 유해는 천호 성지에 묻혀 있다. 이들 두 성인은 팔이 부러지고 살이 터져 나가는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았고 형장에서도 오히려 축복의 순간을 맞는 기쁨에 용약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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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 입교한 손선지는 열심한 신앙으로 이미 16세 때 샤스탕 신부로부터 회장으로 임명되어 순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 병인박해 때 그는 전주 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골에 살며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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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해 12월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잡혀 전주 감영에서의 신문 중 회장임이 탄로난다. 그리 인해 손선지는 공소를 거쳐간 서양 신부와 교회 서적의 출처를 알려는 관헌들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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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그는 옥중에서도 회장의 직무를 다해 갇혀 있는 교우들을 위로하고 권면했다. 12월 13일 그는 대성동, 성지동 등지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 유해는 전주 서천교를 넘어 용마루재와 유상리(柳上里) 뒷산에 묻혔다가 그 아들에 의해 이곳에 욺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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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반의 집안에서 태어나 원을 지낸 적도 있는 정문호 성인은 임천(林川)에서 천주교를 알게 되자 곧 입교했다. 그는 교우들 뿐만 아니라 외교인들에게조차 깊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 뒤 박해를 피해 교향을 버리고 여러 지방을 유랑하다가 병인박해 때에는 전주 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골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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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해 12월 초 사람을 보내 전주 감영의 동태를 살피기도 했는데 그 소식을 미처 듣지도 못하고 12월 5일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붙잡혀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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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정문호는 옥중에서도 항상 기도로 순교를 예비했고 형장에 끌려가면서도 "오늘은 우리가 천국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이라며 자신의 순교를 기쁨으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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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 두 성인은 1968년 10월 6일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백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 반열에 올랐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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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 대전교구
- 주소 : 충남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
- 전화 : 홍산 본당 사무실 (041) 836-0067
- 위치 : 충남 부여읍에서 서천 방면으로 4번 국도를 따르다 보면 홍산면 소재지에 이른다. 여기서 좌측으로 난 613번 지방도를 따라 3.4km쯤 가면 일흥 주유소가 있는 삼거리가 된다. 여기서 충화쪽으로 계속 직진하면 2.8km 지점 길 좌측에 지석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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